인권법 연구원 김혜민 씨의 “아주 작은 책 가게” - 공유.공감 .지속 가능한 독서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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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박현주
작성일 : 2020-10-14
재외동포재단 해외통신원 5, 6기
현) 암스테르담 한글 학교 교사,지사화 컨설턴트

네덜란드의 한 작은 도시 에이더(Ede)에 '아주 작은 책 가게(De Kleine Boekwinkel)'가 열렸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한국 책 독자들을 위한 '공유' 책 가게로 우트레흐트(Utrecht) 대학에서 인권법 박사 논문 중인 김혜민 씨가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책 가게’의 개념은 이미 익숙하다. 그러나 이 '아주 작은 책 가게'는 기존의 책방과 사뭇 다르다. 회원비, 보증금, 연체금 등이 없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유'로써,  책의 재순환과 선순환을 통하여 '지속 가능한' 독서를 추구하고자 한다.  네덜란드 및 유럽의 한인들을 위하여 한국에서 모두 900여 권 정도의 도서를 가지고 들어 왔다. 후원 받은 책이 500여 권, 김혜민 씨 개인 소장 및 새로 구매한 책들이 400여 권이다. 현재 '일반 공유 서가'에는 문학, 인문,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약 600여 권, 'Kids 공유 서가'에는 유아/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책 약 500여 권을 마련하였다.


많은 도서가 전자책으로 읽히는 지금,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타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읽힌 책을 넘길 때  공유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또한, 종이를 한 장씩 넘기는 것은 작은 쉼표를 찍는 것과 같다. 물바가지의 나뭇잎처럼,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책장을 넘길 때 작은 ‘쉼표’들이 책을 읽는 재미와 이해를 한 박자씩 채워 준다.


김혜민 씨는 코로나 사태로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이 멈추면서 아쉬움으로만 남았을 감정들을 구체화할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서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무엇, 모든 것이 막힌 와중에도 여전히 멈출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것 중 하나가 ‘책’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남편과 상의 후 기획안으로 문서화하면서 ‘생각’이 조금 더 '공식적'이 되었고, 그 기획안은 도서/출판 분야에 특별히 애정이 있거나 전문가인 지인들의 피드백으로 다듬어졌다. 거기에 책을 사랑하고 나누기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져 ‘아주 작은 책 가게’는 실제로 구현되기에 이르렀다.


[아주 작은 책 가게]
김혜민 인권법 연구원, 오홍근 농업/개발 컨설턴트, 입주 예술가 오시은


아주 작은 책 가게 주인 김혜민 씨가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관한 서면 인터뷰를 아래 옮긴다.


1. 김혜민 님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덜란드에 온 지 거의 8년이 되어가네요. 국제 공법(Public International Law), 특히 국제인권법(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을 공부하는 연구자입니다. 현재 Utrecht 대학의 네덜란드 인권연구소(Netherlands Institute of Human Rights)에서 박사 논문을 쓰는 중입니다. 15년 전 Leiden 대학으로 반년간 교환학생을 온 것이 네덜란드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 후 스위스와 영국에서 인권법을 공부했고, 몽골에서 아동 인권 옹호 자원 활동을 했었어요. 서울의 '아름다운 재단'에서도 잠깐 일을 배웠고, 가나에서도 아주 잠깐 살았었습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2013년 네덜란드에 다시 왔습니다.


2. 아주 작은 책 가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실질적 운영 전반은 제가 맡고 있어요. 남편(오홍근)은 농업/개발 분야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데, 책 가게에서는 재정 관련 부분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다섯 살 꼬마는 책 가게의 '입주 예술가 (artist in residence)'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저희  SNS에 공지사항의 대부분의 배경 그림이 이 꼬마 아티스트 작품입니다. 더불어 어린이 도서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역할도 하고요.


3. 이 프로젝트의 동기를 가지게 된 어떤 특별한 경험이나 사건이 있었습니까?
갑자기 떠오른 영감이라기보다는 14년 동안 해외 이곳저곳에 머물 때마다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아쉬움을 언어로 표현해 본 것이 책 가게 프로젝트의 첫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타국에서 살다 보면 고국에 대한 여러 가지 그리움이 생깁니다. 맛에 대한 그리움은 한국 식당이나 식료품점이 해소해 줍니다. 풍경이나 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다양한 영상 플랫폼이 달래 줍니다. 하지만 모국어 ‘활자’에 대한 갈증, 고국의 정서가 담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통로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좁습니다. 유럽의 한국 책 독자들에게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국 책 공급 통로가 없습니다. 귀국 전 짐을 처분하는 과정의 일부로 발생하는 개인 간의 중고 책 거래가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렇게 거래되는 책은 도서의 품질이나 컬렉션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인터넷 서점을 통해 해외 배송을 받기에는 책 가격과 엇비슷하거나 그보다 비싼 배송비의 부담을 져야 합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한국 책을 읽고 싶지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경험담이 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이런 아쉬움을 배경으로 '아주 작은 책 가게' 프로젝트가 탄생하였습니다.


4. 책은 어떻게 수집되고 공유되나요?
책 가게의 '공유 서가'는 후원회원들이 본인의 책장에서 골라 보내주신 '씨앗 책'과 책 가게가 선정해서 구매한 책들로 구성됩니다. 씨앗 책을 모으는 전 과정을 저희는 '북레이징(book-raising)'이라고 불러요. 비중으로 봤을 때 공유 서가에서 씨앗 책의 비중이 약 80%입니다. 씨앗 책 후원회원은 책 가게의 후원자인 동시에 큐레이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북 큐레이터들, 그것도 이렇게 다양한 취향과 전문성을 가진 북큐 레이터들이 장서를 구성하는 책 가게는 아마 없을 거예요.


 

[아주 작은 책 가게] 현재 1,000여 권의 공유 웹사이트
남겨진 책들이 아닌, 추천된 책들이라는 점이 <아주 작은 책 가게>의 특징이다.
공유 서가의 약 80%가 씨앗 책이며, 씨앗 책 후원자들은 동시에 씨앗 책의 북 큐레이터가 된다. 공유 이용료는 일반 공유 서가 권당 2유로, Kids 공유 서가 권당 1유로와 '왕복 배송비'를 지불하게 된다.


5. 공식적 북 레이징을 한국에서 하는 이유
말씀하신 대로 씨앗 책 모집은 '공식적으로' 한국에서만 진행하고 있어요. '공식적으로'라는 의미는 책 가게에서 '북레이징' 공고를 내고 씨앗 책 모집 절차에 따라 책을 모으는 것을 한국에 계신 (잠재적)후원회원을 대상으로만 진행한다는 뜻입니다. 공식적으로 한국에서만 씨앗 책을 모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시기나 경향의 측면에서 한국 도서 시장과의 격차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후원하고자 하시는 책의 종류나 상태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맞으면 네덜란드를 비롯한 근처 유럽 국가에서도 후원을 받습니다. 책 가게 운영이 좀 더 안정화되면 이곳에서 씨앗 책 모집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 볼 계획입니다.


6. 도서 보유 수가 늘면 장소가 많이 필요해지고, 관리가 힘들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 어떤 계획입니까?
사실 처음 기획안을 작성할 때, 책 가게 프로젝트의 장기 목표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설정했었어요. 장소가 어디가 되든지 모든 사람에게 물리적으로 똑같이 가까울 수는 없으니 '온라인 스토어' 역시 병행되어야 하겠지만, 책 가게의 독립적인 오프라인 공간이 생긴다면 장서가 늘어나더라도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은 조금 더 나은 환경이 되겠지요. 진짜 그렇게 된다면 장서 관리에 대해서 조금 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필요도 생기겠지요.


7. 이 프로젝트 운영 면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면 어떤 것입니까?
'왕복 배송비'가 주는 심리적 부담이 책 가게의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책들이 한국에서부터 먼 길 운송되어 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용자가 직접 책 가게까지 왔다 가는 경우의 비용과 에너지를 생각해 본다면 실제 배송비 자체가 높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책 가게처럼 소규모 온라인 스토어에서 배송비 자체를 낮출 방법은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대신 공유 이용료 외에는 어떠한 비용도 책정되어 있지 않은 '공유 책 가게'라는 정체성을 책 가게 시스템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벤트성으로 책 가게가 특정 지역으로 직접 방문 서비스를 해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가능하신 분들은 저희 책 가게에 직접 오셔서 책을 픽업하시거나 반납하시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오신 김에 커피도 한잔하시고요.

 

더불어, 아직은 시작 단계라 수익(output)보다 투입 자원(input)이 더 많습니다. 책 가게가 좀 더 알려지고 배송비에 대한 심리적 장벽 등이 해결되어 이용이 더 활발해져야 재정적으로 안정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이 어려움은 시간과 함께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겠지요.


[아주 작은 책 가게] 이용 방법
아주 작은 책 가게는 회원비, 보증금, 연체비 없이 ‘공유’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이로써 발생하는 수익으로 지속 가능한 운영을 지향한다. 책의 가격은 ‘대여’가 아닌 ‘공유’ 이용가이다.


8. 많은 교민이 계속 누릴 수 있는 지속적인 서비스로 성공하길 바랍니다. 교민 및 이용자 측면에서 어떤 협조가 요구되는지요?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책 가게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독서', 책의 순환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책 가게의 서비스가 널리, 부담 없이 이용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앞서 말씀드린 '왕복 배송비'의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늦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책 가게의 취지와 접근법에 공감하여 재정 지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기관을 수소문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 가게 운영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 지원이 아니라 책 가게를 이용하는 공유 회원들에게 배송비를 일부 혹은 전부 지원해 주실 의향이 있는 기관이 있다면 좋겠어요. 편도 배송비만이라도 지원이 된다면 예상컨대 보다 많은 한국 책 독자들이 공유 서가를 부담 없이 이용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유 서가의 이용이 늘어나면 비로소 책 가게 운영이 지속될 수 있는 수준의 수익도 발생하게 되어 연쇄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물론, 공유 서가 컬렉션의 질이 잘 유지되고 관리된다는 전제가 우선해야 하겠지만요. 바로 이 전제가 책 가게의 시작이자 과정, 그리고 완성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DE KLEINE BOEKWINKEL 아주 작은 책가게
 Professor Oudpark 66, 6716 EJ, EDE, Nederland

 아주 작은 책가게 홈페이지 www.dekleineboekwinkel.com/
 아주 작은 책가게 Facebook 페이지 www.facebook.com/dekleineboekwinkel
 아주 작은 책가게 Instagram www.instagram.com/dekleineboekwin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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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안향미 2020.10.22

    와! 정말 신선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멋지고 훌륭한 '아주 작은 책가게'네요.^^ 맞아요. 외국에 살면서 한번씩 한국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을 우편으로 주문하고 배송해서 받으면 금액도 많이 들고요. 제 주위에도 이런 '아주 작은 책가게'가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기사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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